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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Africaㅣ아프리카이야기

무캄바 초등학교 옥수수 죽 급식

무캄바 초등학교 옥수수 죽 급식

 

7, 2학기 개학과 함께 무캄바 초등학교에 옥수수 죽 급식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가난하던 시절,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시행되면서 시골 초등학교에 옥수수 죽 단체 급식이 지원 되었던 때가 있었다. 이 죽은 얼마 후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으로 대체되었고, 우리 부모님 역시 그 급식을 드시고 자라셨다는 말씀을 들을 기억이 있다.

여기 탄자니아 시골 초등학교도 우리나라의 그때와 환경이 비슷하다.

일부 아이들은 깨끗한 교복을 입고 오지만 많은 학생들은 맨발로 5-10km를 걸어 학교를 다닌다.

정부에서 교과서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몇 권의 교과서로 여러 학생이 같이 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노트와 연필은 낡고 찢어 졌으며 메고 다니는 가방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마저도 없는 아이들은 비닐 봉투에 학용품을 넣고 다닌다.

이러한 초등학교에 부족하지만 한 그릇의 따뜻한 옥수수 죽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목이 매였다.

 

 

 

줄을 서서 아이들이 옥수수 죽을 배식 받고 운동장에 앉아 옥수수죽을 호호 불어가며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차례가 다 끝나자 선생님들과 함께 옥수수 죽을 한 그릇 마셨다. 따뜻한 죽을 한 컵 모두 마시고 나니 몸이 따뜻해지면서 땀이 조금씩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땀이나지 않냐고 물으시면서 아이들이 특히 겨울 동안(7-8월이 아프리카의 겨울) 춥게 자고 아침을 거른채 학교에 와서 찬물을 마셔서 탈이 난다며 몸을 따뜻하게 하는 죽을 마시면 건강해진다고 하시며 함박 웃음을 지으시는데 약 50-60원의 옥수수죽 한잔에 저렇게 함박 웃음을 지으시는 분은 어떤 경지에 이르신 분일까? 나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개학날이라 전교생이 출석하지 않아 옥수수 죽이 좀 남았는데 가만 지켜보니 넉살 좋은 유치원 꼬마녀석이 눈치를 보며 4~5컵을 먹는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짠하다 

 

 

 

방학전부터 선생님들에게 급식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학교측에서 단기간 지원이 아닌 최소한의 비용으로 5개월간 급식을 계획을 짰고 이를 위해 학교, 아이들, 학부모들이 적극 동참해 주기로 하였다.

급식을 하는데 필요한 냄비는 선생님이 준비해오시기로 하셨고, 요리는 학부모나 선생님이 해주시기로 하였고, 땔감은 아이들이 등교길에 나뭇가지 하나씩 주어오기로 했다. 옥수수죽을 담아 먹을 컵도 아이들이 각자 준비해오기로 했다 

이 네 박자가 모두 맞아야 개학식날부터 급식을 시행할 수 있었는데.. 아프리카 특성상 첫날부터 시행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학교를 방문하였다.

우리단체는 그저 옥수수죽에 필요한 재료, 옥수수 가루와 설탕만을 지원해 주었다 

내가 학교를 가기 전 상상했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냄비는 가져왔을까? 요리는 도대체 누가 할까? 아이들이 땔감은 가져왔을까? 아이들이 방학 동안 컵 가져오는 것을 잊지 않았을까? 내가 이제껏 생활해본 아프리카에선 의례히 무엇이 하나 빠져 제대로, 제 시간에 시행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틀렸다.

학교 내 관사 앞에선 옥수수 죽 두 냄비가 끓고 있고 한 켠엔 아이들이 개학 날 등교길에 하나씩 주어온 나뭇가지가 쌓여있다.

나는 종종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배우며, 작고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프리카가 좋다.

 

 

 

. 탄자니아 지부장 라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