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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_in_usㅣ사람

노적봉을 닮아가는 노스님의 큰 자비

따뜻한 당신- 북한산 노적사 주지 종후 스님

노적봉을 닮아가는 노스님의 큰 자비

 

 

 

 

북한산 노적봉(露積峯) 아래에 자리 잡은 노적사(露積寺)는 아담하고 호젓한 전통적인 산중 사찰이다. 구파발에서 북한산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차가 다닐 수 있는 맨 끝까지 오른 다음, 경사진 산길을 어른 걸음으로 15분쯤 더 걸어 올라가야 노적사 입구에 도달할 수 있다.

 

노적사 주지 종후 스님(73)이 지난 77년부터 오르내린 가파른 산길에 겨울이 내려앉고 있었다. 마지막 잎새를 지키려는 초겨울 나무들 사이를 차가운 산바람이 세차게 흔들고 지나간다.

노적사 일주문격인 계단을 오르며 올려다본 하늘에는 강인하면서도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노적봉(716m)이 우뚝 서 있다. 그리고 나날이 노적봉을 닮아가는 종후 스님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걱정하며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37년 전, 화두에 몰두하고 있던 30대 중반의 법주사 수좌 종후 스님은 북한산 노적사에서 온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당시 노적사 주지였던 도반이 자기 대신 노적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의 편지였다.

한창 월산 스님 아래에서 참선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참이라 두 번도 생각 않고 거절했지요.”

그러나 결국 상구보리만 하고 하화중생은 안 하시겠다는 건가?”라는 그 스님의 일갈에 종후 스님은 노적봉 아래로 수행 터를 옮기게 된다. ‘주지 맡으면 공부 못한다며 말리던 월산 스님은 떠나는 제자에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라는 당부로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하셨다.

 

칠순이 넘은 지금까지 은사 스님의 이 말씀은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하게 하는 채찍이었다. 초발심자경문의 가르침을 수행의 나침반으로 여기는 스님은 지금도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고는 절 문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노적사 주지 종후스님

 

 

 

자비와 평등은 함께 사는 삶의 지혜

 

노적(露積)’곡식 따위를 한데 수북이 쌓음이란 뜻인데, 불교적 의미로 감로(甘露)가 가득하다로 풀 수 있다.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고 또한 죽지도 않는다는 감로, 노적사는 부처님 가르침을 상징하는 그 감로가 그득 모인 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노적사의 현실은 그리 넉넉지 못하다. 주요 등산로에서 벗어난 외진 곳에 있어 오가는 등산객들도 별로 없고, 신도들이 자주 찾아오기도 쉽지 않은 데다 템플스테이나 큰 행사를 치를 형편이 안 되니 당연한 일이다. 종후 스님이 처음 오셨을 때 노적사는 암자에 불과했고, 산중 살림이 곤궁하니 주지스님이 자주 바뀌던 곳이었다.

 

조선시대 숙종 때 팔도도총섭 성능 스님이 쓴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1712년 창건 때 이름은 진국사(鎭國寺)’였고, ‘노적봉 아래 있으며, 85칸 규모로 성능 스님 자신이 창건했다고 한다. 북한산성을 쌓는 데 동원된 스님들의 숙소, 즉 숙영사찰로서 규모가 꽤 컸을 것이나 화재로 석축만 남았다가 1960년 무위 스님이 중창했고, 종후 스님이 대웅전, 동인당, 적멸보궁, 미륵전, 약사전, 삼성각 등을 증축 또는 신축했다.

2001년 전통사찰로 지정된 노적사는 네팔(팔탄타쉬지하초사)에서 이운해 온 부처님 사리 7과를 봉안, 2009년 적멸보궁이 되었다. 이 모두 오롯이 불사와 수행에만 몰두한 종후 스님의 원력의 결과다.

 

지난 37년간 스님의 또 다른 수행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자비와 평등의 실천이었다.

종후 스님은 ()아름다운동행과도 2009년부터 인연을 맺고, 해마다 두세 차례씩 적지 않은 금액을 보시하신다. 부처님오신날을 보낸 직후는 물론이고, 빠듯한 절 살림에서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어김없이 목돈을 보내신다.

액수가 적어 부끄럽지만, 작은 것들이 모이면 큰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씩이라도 보태는 건데 참.”

참 신기하게도 티끌 모아 태산이란 평범한 말도 스님 입을 통해 나오면 무게가 실린다. 한 발 한 발 스님이 쌓아온 수행의 깊이 때문인 듯싶다.

 

노적사 공양간은 끼니때면 등산객이든 신도든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고, 쉬어갈 공간도 내어준다. 넉넉지 않은 절 형편에 무리인 듯싶은데 스님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도들과 공양주, 종무원들이 자기 살림처럼 알뜰히 챙긴다.

이제는 건강이 허락지 않아 예전만큼 활동도 보시도 못한다는 종후 스님. 그럼에도 금년에 짓고 내년에 죽을지라도꼭 하고 싶은 불사가 있으니 선방 짓는 일이다. 노적봉 아래 분지 터까지 봐두었는데, 국립공원 특성상 허가 문제 등 여건이 녹녹치 않아 염두에 두고만 있다. 아마 은사 스님과의 약속이 스님에게 화두로 남아 있는 듯하다.